pISSN: 1598-7566 / eISSN: 2713-3605

동학학보, Vol.57 (2020)
pp.45~82

DOI : 10.46639/kjds.2020.57.2

묵암 이종일과 동학, 천도교, 그리고 3ㆍ1독립만세운동의 연속성

안외순

(한서대 글로벌언어협력학과 교수)

이 논문은 묵암(默菴) 이종일(李鍾一, 1858~1925)의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의 핵심적인 역할과 그의 동학-천도교-3.1운동 계승관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묵암이 3.1만세운동의 가장 핵심인사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개설서들에서는 ‘인쇄, 배포’ 과정에서의 역할만을 기술함으로써 역할을 애써 축소하였으며, 천도교의 역할 또한 사상사 차원에서는 온전하게 평가받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규명하였다. 첫째, 1919년 3.1운동은 윌슨의 민족주의나 고종의 붕어 등 우연과 외재적 변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철두철미 묵암을 비롯한 천도교의 줄기찬, 그리고 철두철미한 준비의 결과이며, 특히 묵암은 일제강점이 시작되는 1910년부터 줄곧 독립을 위한 대규모 민중봉기를 지향/준비/시도해온 결과로서 마침내 1919년의 3.1운동을 귀결한 것이다. 둘째, 묵암은 3.1만세운동 당시 보성사 사장으로서 단순히 33인의 일인으로서 인쇄와 배포만 한 것이 아니라 오랜 준비, 조직화는 물론 현장 낭독 및 현장 선언문 살포 및 구호 선창 등의 주역이기도 하며, 가담자들 중 가장 중형을 받은 사람에 속했다. 그는 옥중에서도 오직 제2, 제3의 3.1민중시위를 구상하여 실제 출옥하자마자 시위운동을 주도, 이후 결국은 감시 속에서 감금당하다시피 하여 아사하였다. 셋째, 더욱 중요한 것으로, 그는 3.1독립만세운동을 1894년의 동학혁명과 동학전쟁의 계승 및 동학의 1904년 갑진개혁의 계승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이다. 그에게 있어서 3.1운동은 우리 민족 역사나 사상사에서 단절된 어떤 것이 아니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동학과 이것의 더욱 대중적 형태인 천도교의 전통을 당대적으로 실천하는 것으로 인식, 강조하였다는 사실이다.

Continuity of Donghak, Cheondogyo and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Thoughts of Mukam Lee Jong Il

Woesoon Ah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ore role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of 1919 by Mukam Lee Jong-il (1858-1925) and his view that it inherited the spirit of Donghak and Cheondogyo. Although Mukam was the core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the existing rebooks reduced the role of Cheondogyo by describing only its role in the printing and distribution process, and the role of Cheondogyo was also not fully evaluated at the thought history level. The following points were identified in this paper. First, the March 1st Movement in 1919 was not caused by chance and external variables such as Wilson’s nationalism or the death of King Gojong but by the tenacity and thorough preparation of Cheondogyo, including rock and rock, and especially Mukam, which was the result of the massive popular uprising/preparation/attemptions for independence since 1910, when the Japanese colonial era began, finally returned to the March 1st Movement in 1919. Second, Mukam, the president of Boseongsa, a publishing company, during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not only printed and distributed, but was also the main figure in the preparation, organization, field reading, distribution of on-site declarations. And he was sentenced to the heaviest punishment among the participants and served the longest time in prison. And as soon as he was released from prison, he planned the 2nd and 3rd March 1st demonstrations and led the protest. More importantly, he recognized it as the succession of the Donghak Revolution, the Donghak War in 1894, and the Gabjin Reform in 1904. For him,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was not something that was cut off from the history of the Korean people or history of thought, but rather a practice of the Donghak and Cheondogyo tra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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