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이론은 현재의 우주를 확장하는 개념으로 본다. 반면 양자이론은 인간이 속한 우주가 인간과의 불가분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식 향방에 따라 우주의 존재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양자이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확장하는 것은 우주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예측, 관측이다. 오랜 시간 인간은 모든 별들이 태양계에 속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은하계까지 확장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또 은하계조차 수많은 은하계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하계가 존재하는 곳이 우주라는 관측이 나왔다. 여기서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는 것은 우주가 아니라, 인간의 예측과 관측이다.
최민자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빅뱅으로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한다면 ‘애초에 무엇이 빅뱅을 일으켰는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신간 ‘빅 히스토리’에서 “우주의 본질 자체가 생명이고 생명의 전일적 흐름과 연결되지 못한 것은 결국 허구”라며 “생명 차원의 통섭을 배제한 거대사란 시간의 파편들의 단순한 집적(集積)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최민자 성신여대 교수는 “빅뱅으로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한다면 ‘애초에 무엇이 빅뱅을 일으켰는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며 우주의 본질은 ‘생명’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안드로메다의 모습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다만 저자가 거대사에서 가장 중시하는 개념은 ‘생명’이다. 빅뱅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정의하고 우주와 인간의 존재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빅 히스토리의 기본 정의라면, 저자는 그 역사를 관통하는 것이 ‘생명’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저자의 빅 히스토리가 기존의 빅 히스토리와 달라지는 지점은 ‘생명의 기점’이다. 그동안의 빅 히스토리는 138억년의 우주역사, 45억년의 지구역사에 이어 약 38억년 전 최초의 원핵세포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반면 저자는 빅뱅 이전에 생명이 존재했고, 빅 히스토리가 ‘생명의 진화와 확장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빅 히스토리를 “다양한 학문 분야를 함께 묶어 빅뱅으로부터 현재까지의 과거를 통일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새로운 지식 분야”라고 정의했다. 이에 저자는 ‘빅뱅에서 현재까지’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기존의 역사를 양적으로 확장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면서 진정한 빅 히스토리로 “우주의 기원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기간”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거대사(빅 히스토리)가 생명의 거대사일 수밖에 없는 것은 우주의 본질 자체가 생명이고 생명의 전일적 흐름과 연결되지 못한 것은 허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상충하는 이론인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 ‘창조적 진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이처럼 근대적 이분법을 거부하면서 “정신·물질 이원론에 입각한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본체계의 상관관계를 조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생명을 물(物)로 귀속시키는 철학, 단선적 사회발전 이론도 부정하는 저자는 “새로운 문명을 열기 위해 우리가 처음 대면하는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며 “세상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각종 문제의 해결책도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학으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석사학위, 영국 켄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스피노자 사상을 고찰한 연구서를 펴내기도 했지만, ‘생태정치학’이나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 등 생명을 다룬 책을 더 많이 썼다. 교수가 된 뒤에는 한국정치학회와 동학학회에서 모두 활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